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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유럽도시와 예술가

알퐁스 무하. 체코를 사랑했고 체코가 사랑하는 프라하의 화가.

유럽도시와 예술가 시리즈


 

 유럽도시들을 여행하다보면, 그 도시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여럿 있습니다. 미술관을 들러서 여행하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해 유럽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도시에 갔을 때 알아두면 좋을 예술가그 도시에서 만나보실 수 있는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수우판다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충분히 알아보고 적으려 하나 약간의 오류는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 작성하는 포스트이므로 절대 불펌하지마세요. (상업적/비상업적 상관없이)

 

 

 

 

 

체코를 사랑했고 체코가 사랑하는  프라하의 화가. 알퐁스 무하. 


 

 체코를 대표하는 음악가는 상당히 많다. 음악이 무식한 나도 들어본 스메타나, 드보르작등등. 그러나 체코는 다른 유럽 도시들만큼 유명한 미술관도 없고(파리의 루브르, 오르세,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테이트모던, 피렌체의 아카데미아와 우피치, 마드리드의 프라도, 티센등등) 유명한 화가도 많지 않다. 그렇게 때문에 파리를 대표하는 화가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쉽지 않지만 프라하를 대표하는 작가는 구구인가? 라는 답에는 쉽게 답할 수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알퐁스 무하. 무하는 체코를 대표하는, 체코를 사랑했고 체코가 사랑하는 국민화가이다.  아르누보의 대표자인 알퐁스 무하를 오늘은 소개하려한다.

 

 

 

아르누보가 뭐지?


 아르누보 양식이란, 화초를 떠오르게 하는 기하학적인 문양과 곡선을 이용한 평면적인 구성이 전형적인 패턴으로,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에 유럽을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유행한 양식이다. 화려하고 유려한 곡선을 쓴 장식양식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요즈음에도 가끔 가구등에서 보인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가우디도 아르누보 양식에 영향을 받은 사람.

 

 

 

 

 

 그렇다면 무하는 어떤 사람일까?


 

 무하라는 화가를 아는 사람들도 체코의 화가가 아니라 파리출신이라고 생각 하는 경우가 많다. 무하가 파리에서 그림을 오랫동안 그렸기때문인데 ( 같은 이유때문에 고흐도 파리 출신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무하는 1860년도에 체코에서 태어난 체코 사람이다. 어렸을때는 성가대원도 하다가 미술학교도 다니기도 하고 미술공방에서 조수로 일하면서 꾸준히 그림을 그렸었다. 그러다가 당대 최고의 예술의 도시 파리로 무하가 주거지를 옮기기 시작하면서 무하의 예술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1895년 당대의 최고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지스몬다라는 연극의 포스터를 그려주면서 부터.

 

 

 지스몬다는 아테네를 배경으로 한 기독교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희곡인데, 무하는 아마도 이 연극을 개봉전에 보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라고 추측된다. 사선 위쪽을 바라보면서 아름답게 서있는 지스몬다의 모습은 주인공을 맡았던 사라 베르나르를 크게 만족시켰고, 그는 사라베르나르가 하는 연극의 포스터를 그리는 것은 물론, 점점 의상과 무대연출까지 하게 되었다.

 

 그림과 달리 사라베르나르는 그림과는 달리 나이가 많은 여배우였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그림에서 봐도 알다시피, 무하는 여성을 굉장히 아름답고 미화해서 그렸고, 그래서 당시에 여성들이 그의 작품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나같애도 날 이렇게 그려놓으면 좋아서 입 찢어지겠다^______^

 

 이렇게 일약 스타가 된 무하는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의 포스터나 무대연출 말고도 많은 그림들을 그리면서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그러다가 방문했던 미국에서 같은 체코 출신의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듣고 감동을 받아 슬라브문화를 이어나갈것을 결심한다. 미술의 활동을 위해 머물렀었던 당대 최고의 예술의 도시 파리를 떠나 무하는 1910년 체코로 이주한다.

 대부분의 많은 화가들이 죽기전에는 가난했던 것과는 달리 무하는 상업적인 활동을 통해 많은 부를 쌓았다. 그러한 모든 것을 슬리브 문화의 전수를 위해 그 이후 많은 작품을 남겼다. 바로 그것이 앞으로 설명한 슬리브 20연작 이다.

 

 

 그는 왜 체코의 국민 화가가 되었는가?


 무하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체코인들이 사랑하고 체코를 사랑한 화가였다. 그는 자신의 시간과 돈 모든것을 바쳐 슬리브 20연작이라는 엄청난 대작을 만들어냈다. 그 뿐만 아니라 체코의 화폐를 그리고, 프라하를 대표하는 성당 성 비투스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그렸다.

 그가 살아있던 때는 체코에게는 힘든 시기였다. 끊임없이 외세에 침공당하는 때에 그는 체코사람들에게 그들의 문화의 우수성과 주체성을 그림으로 보여줬다.  

 


 이 그림은 무하가 그린 복권을 판매 홍보를 위한 포스터이다. 복권을 산 수익금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하기로 하면서, 체코어가 말살되어 가고 있던 체코에서 복권을 사서 이 돈으로 애들을 교육하자.라는 취지를 담고 있는 포스터이다. 


 그래서 앞의 아이는 체코의 어린이를 표현하고, 그 아이는 책을 들고있다. 뒤에있는 할머니는 체코의 신인데, 절망하는 그녀를 그림으로써 신조차 자신들을 구해줄 수 없다, 우리가 교육으로 우리 자신을 구해야한다는 생각을 표현해냈다. 이러한 조국에 대한 사랑을 체코 사람들도 알고 있었기때문에 그는 체코에서 국가적인 화가로 추앙받고 있다. 

 

  그런 그가 침략에 방해가 되었기때문에 1939년 독일은 체코를 침공하자 마자 그를 체포했고, 옥중 생활에 얻는 폐렴때문에 같은해 그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를 보면 윤동주시인을 비롯한 독립을 꿈꿨던 우리나라의 시인들이 생각난다.

 

 

프라하에서 만날 수 있는 무하의 대표작들


 

 

메데.(메데이아.) 프라하의 무하 박물관에서 볼 수 있음.

 

 그리스 로마 신화중의 한 이야기. 이아손과 결혼하기 위해 친동생까지 죽인 메데이아는 메데이아의 나라에서 도망쳐  이아손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한지 10년후 이아손은 젊고 예쁜 왕녀와 바람이 나 버렸고,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바람에 화가 나 왕녀를 죽였다. 그 뿐만 아니라 이아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이아손과의 사이의 아들 둘 조차 죽여버린다. 그러한 메데의 이야기를 사라베르나르의 연극으로 만들었고, 위의 그림은 그 연극을 위한 무하의 포스터이다. 칼을 들고 있는 것이 메데고, 아래 시체가 (자세히 보면 두구이다.) 남편을 뺏어간 왕녀, 그리고 아들이 되겠다.

 

 

 대부분의 메데이아를 그린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자신의 아들조차 죽여버린 패륜을 반성하고 수치스러워 하는 메데이아가 그려지지만, 무하의 포스터에서는 그러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당당히 오히려 이쪽을 째려보고 있다. 이런 면에서 무하의 생각을 알 수있다.

 

 무하는 내가 본 어떠한 화가중에서도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그린다. 또 거의 대부분의 그림이 여성이 중심이다. ( 무하 박물관이나 프라하 국립박물관에가서 무하의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남성의 그림은 아주 적다. ) 무하는 여성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했고, 여성을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여러가지 그림들에서 그의 여성관이 드러난다.

 

 

 

4개의 꽃을 주제로한 그림. 프라하 무하 박물관에서 볼수있음.

 

 무하 자신의 작품들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라고 한다. 장미, 아이리스, 카네이션, 백합을 주제로 그린 그림은 정말 아름답다. 이 작품은 포스터로 만들어졌는데, 실물사이즈를 보면 섬세하고 아름다운 색감과 그림에 혀가 내둘러진다.

 

 

 

히야신스 공주 1911년작품. (무하박물관에서 볼 수 있음)

 

체코로 돌아오고 나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오페라 판토마임의 히야신스 공주를 위한 포스터다.

 

 

 

슬라브 20연작 ( 프라하 국립 미술관 VELETRŽNÍ PALACE 에서 관람가능)

 

 미국에서 돌아와 체코에 이주하면서 슬라브의 문화를 전수해야겠다고 생각한 무하는 18년에 걸쳐서 20개의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내용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슬라브의 오래된 역사와 근대역사까지.. 그림으로 역사와 문화를 남기겠다고 생각해서 혼신을 다해 그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20개의 그림을 팔지 않고 나라에 기증했다. 따라서 20개의 그림이 뿔뿔히 흩어지지 않았고, 우리는 프라하 국립 미술관에서 20개의 작품을 모두 만나볼수 있다.

 

 그가 역사와 문화를 전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는 것, 화가로써 모든 것을 걸고 20년동안 피와 땀으로 그린 모든 작품을 나라에 기증했다는 부분에서 얼마나 그가 체코를 사랑하는 지, 그리고 왜 체코가 그를 사랑하는 지 알수 있었다.

 

 위의 사진 보면 알듯, 그림의 크기가 어마어마 하다. 그러한 그림이 20개. 그림 하나하나가 너무 좋았다.

 

 

 

초록창 ( 프라하성 비투스성당에서 관람가능 )

 

 색유리창으로 잘라서 만드는 일반적인 스테인드 글라스와는 달리, 무하는 창에다가 물감을 칠해서 말리고 칠해서 말리고 이렇게 수천번을 거듭해서 이 창을 만들어냈다. 대단히 유려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무하의 작품을 볼 수 있는 프라하의 장소들


 

 

 

 

 무하 박물관.

시내에 있는 무하박물관은 명칭대로 많은 무하의 작품들을 가지고 있다. 포스터나 회화 그림 뿐만 아니라

 

 

무하가 디자인한 지폐나 조각, 장신구들도 구경이 가능하다.

 

 

 

 

프라하 국립 미술관 VELETRŽNÍ PALACE 

 

슬라브 20연작 뿐만 아니라 회화작품들도 구경할 수 있다. 그 외 인상파들의 작품도 많이 있는 곳들이기때문에 추천해드린다.

 

 

 

<프라하 여행기속 무하 박물관 이야기  click>

<프라하 여행기속 슬라브 20연작 이야기 click>

<프라하 여행기속 프라하 국립 미술관 VELETRŽNÍ PALACE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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